그렇게 몇 달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오토 방문이지만 사실상 예약은 매우 충동적이었다. 그래서 역대급으로 끔찍했던 토요일 스케줄을 견뎌낸 다음날 일요일 12시 타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어떻게든 맞춰서 갑자기! 드/디/아 오게 되었어 😀
요즘 워낙 티오마카세가 많이 생겨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졌는데, 그 중 옴오토를 우선순위에 둔 것은 공간과 분위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인스타에서 훔쳐본 후기 사진 퀄리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발로 찍은 제 사진은 오직.. 기록용으로만 봐주세요) 지하 특유의 아늑함에 은은한 조명이 힘을 더해 매우 차분한 공간이다. 진행되는 티 세리머니와 너무 어울려.
처음에는 3개월, 지금은 4개월에 한 번씩 변경된다는 옴오토의 티 오마카세 올 시즌 첫 티는 국화차다. 사실 공복에 가서 조금 걱정이 됐지만 향긋한 국화차가 부담없이 배를 따뜻하게 하기에 좋았다. 갑자기 추워져서 아마 히터를 켜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점점 더워진 곳을 꺼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엄오토티 오마카세는 왜 세리머니라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플레이팅부터 다구 하나까지 낭비하지 않고 다구를 데우기 위해 물을 붓는 손놀림까지 섬세하고 정성스럽다. 브로잉 기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수제 잔 또한 매우 귀중하다.
유자젤리도 은은해서 부담없이 먹었습니다.
순식간에 지난 가을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싶어 몸부림치는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옴므 오토 플레이팅!포근한 웃디향이 나는 각종 자연물 속에 고구마 경단, 그리고 무화과잎차와 황칠나무차를 준비해 주신다.
나는 쑥? 했는데 코코넛 향이 난다는 무화과 잎차의 강한 우디향이 마음에 드는 황칠나무차를 꾸준히 접할수록 취향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루이보스는 남자의 스킨향이 떠오르면 싫어하던 내가 달마이어 루이보스를 매일 마시는걸 봐도-성수티 오마카세에는 단순히 차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차에 대한 역사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그래서 반에 온 느낌도 들고 알차고 더 흥미롭다. 다음 티코스는 다산 정치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의 제자, 그리고 후손들의 이야기까지 해준다. 차는 우리가 아니라 고운 가루로 갈아 마시게 된다. 그래서 밥그릇에 가루가 가라앉는 것을 볼 수 있다. 데코레이션으로 올린 국화와 금빛으로 빛나는 다산정차를 보는 것도 힐링이 된다.티오마카세에서 다식한 핑거푸드로 준비되므로 옴오토에서 손세정제와 함께 물수건을 준비해 주신다. 특히 손 위생에 민감한 편이라 이 섬세함도 아주 좋다. 참고로 찻잔에 데코레이션하는 국화는 저 돌을 뒤집어서 툭툭 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 🙂 손으로 집어서 쑥 뺀다.사실 다음 티 세리머니는 시간이 좀 걸린다. 다구를 데워서 우리는 과정의 모든 것이 행위예술처럼 진행되어 맛본 금목서 홍차, 사실 전날 노동주로서 마신 와인의 여파와 직접 준비한 BGM이 백색소음이 되어 조금 졸리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는데 그 나른한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그냥 즐기기로-구운 설기를 호박 퓨레와 함께 준비해 주시는데, 구워서 그런지 밀도가 낮아진 설기가 폭신폭신하고 식감이 무겁지 않아 좋다. 같이 플레이팅된건 핑크설탕(?), 그리고 퓌레를 담아주신 용기조차 너무 유니크하고 예뻐요.:)금목서는 만리향이라고도 불리며 향이 매우 좋은 꽃으로 홍차에 블렌딩하여 은은하게 잘 어울린다.성수티 오마카세 구성이 좋았던 것은 티 자체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심했던 한국차라는 것도 좋았고 블렌드도 과하지 않고 깔끔했고 (허브 알레르기가 있어 걱정했던 부분도 있어) 곁들임도 차의 맛을 가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하게 곁들여주시는 설명도 딱 좋아. (사장님 목소리가 잘생긴 영향도♡)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서울숲으로 나간 보람이 충분히 있었던 하루 :)마무리는 타락(우유)죽! 마침 배고픈 차에 정말 환영했던 코스보리 강정이 녹아서 졸리뽕을 말아 먹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아는 맛이라 살짝 비워 먹었다.엄오트렌 시즌을 놓쳐서 너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